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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 로그/쥰

鬪技場

by 연어감자 2025. 7. 10.
  • 베르시온 축제
  • 트레이너 서바이벌 이벤트 로그
  • 배틀 퍼포먼스 부문
  • 시작하기 앞서 본 로그의 배틀방식은 게임보단 애니메이션을 참고하였음을 알립니다.
  • 날조한 설정이 존재합니다. (공용어를 쓰되 각 지방마다 악센트가 다르다 등)
  • 편의상 쥰의 시점으로 진행되며 포켓몬의 울음소리는 영문으로 표기됩니다.
  • PC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모바일 가독성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알립니다.

 


 

살짝 습한듯 하면서도 적당히 서늘한 공기가 뺨을 스쳤다. 초여름의 밤 치곤 나긋한 바람이 불어오니 조금 습하긴 해도 불쾌감은 없었다. 모든 칼로스가 그런 건 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눈에 담은 칼로스는 모두 한 폭의 명화같은 곳이었다. 화려한 미르시티의 공항에서부터, 아직 내가 모르는 세상은 많구나-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으니까. 반짝반짝 빛나는 거리를 보며 흥분한 한바이트를 진정시키는 것도 이걸로 벌써 4번째였다. 도대체 왜 반짝이는 것에 집착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마음 자체는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욕망에 충실한게 나쁜 건 아니니까. 예쁘고, 멋지고, 빛나는 무언가를 보면 갖고싶은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

어린 시절의 내가 할아버지의 배지 케이스와 우승 트로피들을 바라볼 때도,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축제는 즐거웠다. 금지구역에 잠시 발을 들이는 멍청한 짓을 한 탓에 안내역에게 조금 미운털이 박힌 것 같지만, 궁금한 것을 어느정도 해소했으니 그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솔직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베르시온 성의 로비로 입장한 나는 이미 배틀 코트에서 한바탕 날뛰고 있는 포켓몬들을 눈에 담았다.

"이어롤, 점프킥!"

"피하는거야, 꼬렛!"

하늘로 훌쩍 뛰어오른 이어롤이 눈을 빛내며 목표를 향해 발을 내려찍었다. 꼬렛이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방향이 그리 좋진 못했다. 이어롤의 공격을 직격으로 맞은 꼬렛이 켁, 하고서 짓눌린다. 제대로 공격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이어롤이 다시 폴짝 뛰어 거리를 두는데...

"꼬렛, 시합 불가능! 이어롤 승리!"

"와! 우리가 이겼어!"

"아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희비가 교차한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꼬렛이 관객의 환호성 소리를 듣고서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파르륵 떨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제 트레이너에게 돌아간다. 승리를 기뻐하는 이어롤이 폴짝폴짝 뛰어 제 트레이너의 품에 안긴다. 나는 잠시 잊고 있던 몇년 전의 그곳을 떠올렸다.

커다란 경기장에, 지금 눈 앞의 관중은 한 줌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인원이 함성을 터뜨리는 그곳을. 그 자리에 모인 자격을 갖춘 이들 중 가장 강한 트레이너를 선별하는 그곳을! 내 심장이 뛰고, 눈이 빛나고, 머릿속이 아득해 질 정도로 즐거웠던 경기장. 한번 떠나갔던 그곳을 막상 눈 앞에 다시 두니 망설여진다. 체육관과는 별개의 문제다. 다시 관중들 앞에 서야 한다고? 그래도 되는 건가? 응원하던 사람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이미 도망친 사람이 돌아와도 되는 것일까?

배틀 코트가 비워진다. 다음으로 경기하실분, 없으십니까? 심판을 맡은 이벤트 진행요원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망설임과 별개로 내 몸은 이미 손을 들고 있었다.

"오! 거기 키 큰 트레이너님! 그리고 모자를 쓴 반바지 친구! 앞으로 나와주세요!"

주변의 사람들이 갈라서서 길을 터준다.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는건 왜일까? 뜨거운 열기가 한차례 지나간 코트는 여기저기 패이거나 불타버린 자국이 남아있다. 흙바닥이니만큼 큰 영향은 없겠지만, 날아다니는 녀석을 꺼내는게 차라리 좋을까. 유리돔이 꽤 쾌적하게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도 하고 말이다. 눈 앞에 선 반바지를 입은 꼬마가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요, 형! 제가 이길거지만요!"

쎈 발음을 뭉개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하나지방쪽의 억양. 나는 내밀어진 작은 손을 바라보았다. 그래, 망설임은 잠시 접어두자. 도망쳤다는건 곧, 다시 돌아올 준비를 하러 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나는 눈 앞의 트레이너의 손을마주 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쉽진 않을 겁니다."

"좋습니다, 두 선수 준비 되셨나요? 이미 여러번 진행된 배틀이니만큼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이벤트로 진행되는 이번 매치에서는 각자 사용할 포켓몬은 한 마리! 어느 한쪽이 시합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거나, 항복 선언시 배틀은 종료입니다! 각자 자리로 향하시고, 포켓몬을 준비해주세요!"

허리춤에 매인 몬스터볼들을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코트의 끝자락으로 걸어간다. 사용할 포켓몬은 한마리. 상대가 뭘 낼진 모른다. 척 봤을 때 아마도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트레이너. 뱃지 개수는 많아봐야 서너개? 아니지, 재능 있는 녀석이라면 다섯개까지는 가능성이 있겠다. 하나지방에 서식하는 포켓몬들의 풀을 생각하면... 아니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한동안 배틀을 쉬었던 그녀석한테 긴장감 좀 심어주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나는 몬스터볼을 손에 쥐고 코트를 바라보았다. 이미 한발 앞서 조금의 고민도 없이 허리춤에서 몬스터볼 하나를 꺼내들고 나를 기다리는 트레이너가 보였다.

그래, 이런 자리라면 가장 믿을 수 있는 네 파트너 말고 다른 포켓몬은 생각 안 나겠지. 아니면 진지하게 필승전략을 세워 온 거겠거나.

"가자, 마릴리!"

"부탁한다, 플라이곤!"

각각의 볼에서 튀어나오는 포켓몬들. 간만의 배틀 필드라 그런지 고개를 기울이다 키득거리며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플라이곤과, 씨익 웃으며 배를 퉁퉁 두드리는 마릴리. 분명 물타입이랑 페어리타입이었나. 상성이 완전히 말렸군. 포켓몬을 확인한 트레이너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지만, 글쎄. 내가 설마 저 빌어먹을 분홍빛 악마들 대처법도 마련하지 않았을까? 보기 드물게 최종진화체끼리 매칭이 성사된 덕인지 관중들이 조금 더 늘어난 것 같았다. 배틀에 참가하는 두 사람의 포켓몬이 준비된 것을 본 심판이 붉은색 깃발을 하늘 위로 들어올리더니, 아래로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시합 시작!"

"마릴리, 아쿠아제트!"

"높이 날아!"

[Maaa--!!]

넘실거리는 물을 몸에 두른채, 허공을 가르며 마치 무언가로부터 발사된 듯 빠르게 튀어나온 마릴리가 플라이곤을 향해 뛰어오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굉장한 속도감에 플라이곤이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한다. 늦게 날아오른 탓에 왼 다리에 스친 물살에 플라이곤이 당혹스러운 듯 허공에서 흔들렸다.

"당황하지 마, 플라이곤! 거리를 벌려!"

"아, 치사하게! 괜찮아, 마릴리! 어차피 저쪽도 공격하려면 내려와야해!"

[Ply...]

높이 날아오른 플라이곤이 눈가를 찌푸리는게 보였다. 탁 트인 허공이 아니라 불만이다 이거지. 유감스럽지만 이곳은 플라이곤이 여태까지 누려왔던 화창한 알로라의 하늘이 아니다. 아마도, 앞으로 내가 향할 곳 또한 언제나 탁 트인 환경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이 자리에 파트너인 이븐곰이 아니라, 플라이곤을 꺼낸 이유는 단 하나.

딱히 날아오르지 못해도, 너는 강하다는걸 증명하기 위해서.

"유턴을 반복해!"

"배북이야!"

자신만만하게 웃은 마릴리가 쿵쿵쿵! 소리를 내며 자신의 배를 두드린다. 자신의 체력을 깎아서 스스로의 공격력을 높힌다. 리스크가 큰 만큼 받아갈 건 받아가겠다는 심보가 빤히 보이는 모습에 내심 간담이 서늘했다. 아쿠아제트야 물타입이 붙은 어지간한 포켓몬들이라면 다 배우는데다 빠르게 선공권을 잡을 수 있는 기술이기에 많이들 채용한다지만, 배북이라고? 머릿속에서 치근거리기나 아쿠아테일 따위를 맞고 날아가는 플라이곤이 그려진다. 쿵쿵, 빠악!

플라이곤이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에서부터 쏘아져 내리듯 내려앉는가 싶더니 그대로 마릴리를 스치듯 공격하고 다시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그다지 큰 타격이 없는 모습에 마릴리와 트레이너가 승리를 확신한듯한 미소를 지었지만...

적어도 플라이곤은, 감을 잡은 모양이다.

유턴의 효과는 본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는 것. 정확히는 몬스터볼로 돌아와 동료와 교대하는 기술이지만, 1대1 배틀이 되거나 마지막 주자로서 선보이는 유턴은 다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나 날아다니는 녀석이라면 더더욱.

플라이곤이 다시 하강한다. 마릴리를 공격한다. 날아오른다. 하강한다. 공격한다. 그것을 반복한다. 쉴 틈 하나 주지 않고서, 계속해서. 처음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자뭉열매를 꺼내 먹던 마릴리가 점차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는지 날아오는 플라이곤의 공격을 피하려 한다. 트레이너 또한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어어, 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때는 늦었다. 플라이곤은 멈출 생각이 없다.

아무리 데미지가 적게 들어가도, 그것을 여러번, 그것도 주고 받는 것 없이 일방적으로 받아낸다면 무시할 수 없을테니까.

어릴적에, 니로우 무리가 델빌 한마리를 두고 단체로 번갈아가며 집단구타를 하던 것을 목격한게 문득 생각났다. 비록 플라이곤은 한마리지만. 분명 상성상으로도 이쪽이 불리한데, 전황을 휘어잡고 있는 것은 이쪽이다. 공격력을 대가로 체력을 바친 것이 큰 패착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트레이너가 반사적으로 마릴리에게 무어라 외쳤다.

"마릴리, 침착해! 타이밍에 맞춰서 아쿠아테일로 튕겨내는거야!"

[Maa!!]

꼬리에 물을 머금는다. 몸을 웅크리고 최대한 플라이곤의 공격을 비껴맞으려 노력하는 마릴리의 노력은 가상했지만, 이쪽도 마냥 지난 1년간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허비한 시간을 무마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 커다란 차이만큼은 묻어두고 싶어서.

플라이곤이 하강한다. 마릴리가 눈을 번뜩이며 세차게 물살을 가르며 꼬리를 휘두른다. 샐쭉 웃은 플라이곤이 꼬리를 바짝 세우며 마릴리의 공격을 피해 공중제비를 돌았다. 날래게 피하는 모습에 객석에서 탄성이 들려왔던가. 마릴리가 무게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아이언테일!"

그대로 강하게 후려쳐지는 강철의 꼬리는 장난꾸러기 요정을 무참히 짓밟았다. 자세가 흐트러지며 약점이 드러난다. 플라이곤이 자신 만만하게 웃으며 땅을 뒤흔든다.

"우왓!! 마, 마릴리! 치근거리기!"

딱히 지진을 지시한 적은 없는데? 하지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휘청휘청 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굴러다니던 마릴리는 갈라진 땅에서부터 튀어나온 바위에 직격으로 맞아 공중으로 떠오른다.

잔혹하게도 플라이곤은 완벽하게 승부를 결정내고 싶었나보다. 나를 보며 웃었다.

"아이언테일!"

"에잇, 아쿠아제트로 들이받아버려!!"

마릴리는 빠르게 물살을 가르켜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튀어 나간다. 트레이너의 판단은 좋았다. 마릴리 또한 좋게 반응해줬다. 다만 저 둘이 패배한 이유를 들어보자면....

[Ma...!!]

[Ply----!!!]

"마릴리!!"

"좋아, 잘했어!"

간발의차로 아쿠아제트를 비껴낸 플라이곤이 그대로 날아가는 마릴리를 강철처럼 단단한 꼬리로 말아 회전시켜 땅에 처박았다. 쾅, 하고서 커다란 소리가 나며 흙먼지가 뭉게뭉게 일어난다. 심판이 서둘러 땅에 처박힌 마릴리를 확인했다.

"....마릴리, 시합 불가능! 플라이곤 승리!"

밝게 웃으며 열리는 유리돔을 훌쩍 뛰어넘어 날아온 플라이곤이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귓가가 먹먹했다. 아마도 함성소리때문인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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